한국화보
인물인터뷰
월봉 조동희 화백나라꽃 무궁화에 쏟아내며 국위 선양은 물론~!!
마은진  |  akdmswls42@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1.29  10:06:4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네이버밴드 msn
▲ ▲ 월봉 조동희 확백은 예술가란 ‘창조하는 일’을 운명적으로 선택받은 인간이며 온갖 세상살이 중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가 제일 편안한 시간이라는 마음을 갖고 작가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 오현정 기자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다. 무궁화의 정신은 단결과 협동심으로 인내 끈기 그리고 진취성을 상징하고 있다. 후손들이 사는 세상은 평화와 번영으로 하나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는 월봉 조동희 작가를 만났다.

90을 바라보는 월봉 조동희 화백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했고 목소리는 힘이 넘쳤고 걸음걸이도 청년처럼 힘이 넘쳤다. 더군다나 무궁화 그림을 설명하며 자신이 나라꽃 무궁화와 사랑에 빠진 사연을 이야기할 때는 20대 청년이 사랑에 빠져 행복해 하는 모습과 같았다.

‘작품은 곧 그 작가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림마다 월봉 선생의 진취적 기상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에 푹 빠져 56년째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그에게 “무궁화 꽃은 행운의 선물로 행복한 삶을 살게 했다”고 말하는 월봉 조동희 작가의 인생이야기를 들어 본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다. 무궁화의 정신은 단결과 협동심으로 인내 끈기 그리고 진취성을 상징하고 있다. 후손들이 사는 세상은 평화와 번영으로 하나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는 월봉 조동희

 

그림에 입문한 계기

월봉 조동희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전남대학교 토건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가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됐다.

건축가로 활동하던 시절 1959년 현대건축설계사를 설립한 월봉은 광주 금남로의 첫 현대적 건물인 전일빌딩을 설계했다.

이후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에게 ‘월봉’ 아호를 받았고, 유명한 선생들에게 사사를 받으며 본격적인 한국화를 시작했다.

1983년 한국미술공모전에서 무궁화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한국미술대상전 초대작가상, 대한민국 무궁화 대상 등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나아가 ‘무궁화 작가’로 불릴 만큼 나라꽃 무궁화를 소재로 50여년간 다양한 무궁화 그림에 온 열정과 사랑을 쏟아온 공로로 2012년 대한민국 무궁화애국상을 수상했다.

또, 광주광역시립미술관 초대작가로 개인전을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며 월봉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더불어 사단법인 국미회운영위원, 대한미국 미술대전 초대 출품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영암군향토가비 작사 건립과 광주공고 월봉푸른숲 기념비 건립을 했다

우리나라의 나라꽃은 무궁화이다.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영원하다는 의미로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기원을 담고 있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여름 내내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 ▲ 우리나라의 나라꽃은 무궁화이다.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영원하다는 의미로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기원을 담고 있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여름 내내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 오현정 기자

나라꽃 무궁화에 담긴 의미

 

각 나라에는 자국의 국화가 있다. 일본은 국화, 미국·잉글랜드·불가리라·이라크-장미, 프랑스-아이리스, 호주-골드아카시아, 스리랑카-연꽃, 캐나다-단풍나무, 독일-수레국화, 스코틀랜드-엉겅퀴, 네덜란드- 튤립, 파키스탄-자스민, 필리핀-쌈바귀타(말리꽃), 이집트-수련, 북한-함박꽃나무, 스위스-에델바이스, 러시아-해바라기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꽃들이 국화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나라꽃은 무궁화이다.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영원하다는 의미로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기원을 담고 있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여름 내내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성경에 등장한다는 무궁화는 상징하는 의미도 다양하다. 흰 무궁화의 꽃잎은 순결, 붉은 부분은 십자가의 고행, 노란 꽃술은 부활의 영광을 뜻하며 종교적인 사랑과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월봉 조동희 화백은 무궁화의 유래에 대해 백화 사전과 산해경, 고금주를 들어 이야기했다.

한반도에서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으로 이 책은 상고시대의 지리·풍속을 널리 조사해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의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君子之國在其北……有薰花草 朝生募死)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국은 한반도라는 것이 밝혀졌고, 훈화초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 이름이다. 또한 중국의 <고금주(古今注)>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더라"(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구절이 있다.

이상의 문헌만으로도 한반도에는 수천 년에 걸쳐 무궁화가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 ▲ 끊임없는 열정과 사랑을 나라꽃 무궁화에 쏟아내며 국위 선양은 물론 통일된 한반도를 가득 채운 무궁화 작품 등을 통해 56년째 무궁화를 화폭에 담고 있는 월봉 조동희 화백. © 오현정 기자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 7월 당나라의 광종(光宗)에게 국서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 국서 가운데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 국서를 초한 사람은 중국에까지 문장가로 이름이 나 있던 최치원으로, 그의 문집인 <최문창후문집(崔文昌候文集)> 제1권에 그 초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신라시대부터 한국을 '무궁화 나라'(槿城)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무궁화가 어떻게 한국의 나라꽃이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의 윤치호 등의 발의로 애국가를 만들면서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조선의 나라꽃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직후인 1949년 10월 대통령 휘장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하여 문교부가 제정·사용했고, 1950년에는 태극기의 깃봉을 무궁화의 꽃봉오리로 제정했다.

이처럼 무궁화는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나라꽃으로 우리 민족의 상징이 되어 왔다.

 

90을 바라보는 나라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90을 바라보는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월봉 조동희 작가, 그는 건강 비결에 대해 “머리에는 지혜가, 얼굴에는 미소가, 가슴에는 사랑이, 발에는 질서가 있으면 된다”고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매일같이 하는 운동하는 것과 천식을 이겨내기 위한 기구 호흡 연습이라고 한다.

한때 조동희 화백은 천식으로 스테로이드제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의사들이 염려하는 스테로이드제의 상습복용 부작용인 수전증을 극복했다. 만일 조동희 화백에게 수전증이 왔었다면 아마도 그는 지금의 멋진 무궁화와 물방울로 대표되는 그의 역작의 맥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하늘이 무궁화 사랑에 전심전력하는 조동희 화백의 열정에 감동했나 보다. 이를 두고 우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생을 꾸리며 무언가 큰 포부를 이루려 무궁화 작품에 온 열정을 담아 온 조동희 화백에게 존경을 표한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바오로 2세가 월봉 조동희 작가의 무궁화 그림을 구입했고, 그는 그림을 증정받고 손수 친필 서한을 보내왔다.

외국의 인사들 월봉 조동희 작가의 무궁화 극찬하며 소장

월봉은 생에 큰 욕심을 낸 적이 없다 한다. 그저 물 흐르듯이 소박하게 살면서 우연히 나라의 꽃 무궁화를 그리게 되었고, 그것을 외국인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찾아온 최고의 행운.

조 화백은 1979년 대한체육회아마추어 복싱연맹 광주전남 회장을 맡아서 활동하던 시절 외국에서 경기를 할 때 참석하는 인사들에게 무궁화 그림을 선물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너도나도 무궁화 그림을 선물로 받고 싶어 했다. 후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무궁화 꽃은 성경에 나오는 샤론의 꽃을 상징하고 있어서 무궁화 그림을 소장하는 것은 하늘의 꽃을 소장하는 것으로 큰 행운으로 여긴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바오로 2세가 월봉 조동희 화백의 무궁화 그림을 구입했고, 그는 그림을 증정받고 손수 친필 서한을 보내왔다. 그 이후에 국내·외 추기경과 신부들이 교황 바오로 2세가 구입한 무궁화 그림과 친필 사인을 소장하기 위해 구입해 갔다고 한다.

1994년에는 미국 백악관에 그림을 건 인연으로 조시부시 대통령의 친필 편지가 왔고, 2002년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브라운 박사의 감사 편지도 받았다.

이 외에도 세계 각국에 산재한 조동희 화백 그림의 애장가들로부터 받은 격식과 예를 갖춘 답례의 서찰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무궁화 작품을 사랑해 주는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현재 월봉 조동희 화백의 작품은 청와대 영빈관과 춘수관을 비롯한 국립현충원, 미백악관, 미국 시애틀 박물관, 고르바쵸프 구소련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용산전쟁기념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용산전쟁기념관에 소장 되어 있는 무궁화 작품은 『2019년 월봉 조동희 미수(米壽)展』를 통해 전시했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무궁화 작품에는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져 무리있거나, 홀로 피어 있거나, 한반도를 가득 채운 모습 등 다양한 형상의 무궁화 작품이다.

또한 광복회 전쟁기념관, 기무사령부, 경찰청 공동경비구역, 안중근의사기념관, 이순신장군 기념관, 김좌진장군기념과, 백법김구선생기념과,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과, 광주광역시청, 전라남도청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월봉 조동희 화백은 미수(米壽)展을 통해 “미래에는 평화와 번영으로 하나 되어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녹록지 않은 미수를 거쳐 90을 바라보는 세월을 살아오는 과정을 거친 빛나는 삶은 후대에게 값진 교훈을 줄 것이고 사회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해 본다.

월봉 조동희 확백은 예술가란 ‘창조하는 일’을 운명적으로 선택받은 인간이며 온갖 세상살이 중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가 제일 편안한 시간이라는 마음을 갖고 작가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 나라꽃 무궁화를 사랑한 월봉 조동희

조동희 화백이 말하는 예술가란

 

예술가란 ‘창조하는 일’을 운명적으로 선택받은 인간이며 온갖 세상살이 중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가 제일 편안한 시간이라는 마음을 갖고 작가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화를 그려온 사람으로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변화를 추구하고자 노력했다. 단순한 모방이나 답습을 탈피하여 나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탐색하기 위한 연구와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창작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에 축적된 지혜와 통찰력, 체험담을 적어가는 일은 실로 매력적이다. 하나 대다수의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세평(世評)의 인색함은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 세상 길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적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허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 안정적인 기술, 타락한 거짓 전통에 대한 반발이 없는 답습, 그런 병폐가 예향 광주를 사지(死地)로 만들고 있다며 아예 예향은 이미 죽었다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면서 철학이 깃들지 않고 뚜렷한 체계도 없어 사상이 전무한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예술로는 더 이상의 경쟁력이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지 말고 저속한 타협에는 단호히 반발해야 하며, 기존의 것들에 대해서는 완강히 저항하고 분노해야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예술의 속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여 썩어 악취를 풍기는 웅덩이 물이 되지 말고 스승을 뛰어넘어 도도한 물줄기로 흘러가 출람(出藍)하라고 후배들을 향해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월봉 선생(화백)의 예술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는 정신은 놀랍다. 더구나 생활 속에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유연하고 열린 사고로 개선의 실천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영원한 청년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 같다.

무궁화 하면 떠오를 만큼 한평생 무궁화를 그려온 월봉 조동희 화백은 “무궁화 한그루를 우리 집에 걸면 교육의 장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웃음꽃으로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미래에도 같이 사는 이 땅에 함께 할 고귀한 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무궁화를 직접 보고 그린 작품에는 무궁화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과 사랑이 느껴져 그 가치가 소중하게 전달되었다. 그가 그린 무궁화에는 역사가 담겨있고, 나라가 없는 땅에서 태어나 구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조국의 해방부터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경험한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픈 역사를 무궁화로 치유하고 희망의 빛으로 만들려고 애쓰며 정성을 다해 그린 무궁화 그림이 전해주는 고귀함과 굳건함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

오현정 기자/ 김화일 본부장

 

 

 

 

 

<저작권자 © 한국화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네이버밴드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고창 청보리밭 축제
김종인 위원장, 세번째 광주 방문 5.18 민주 표지 참배
김종인 위원장, 세번째 광주 방문 5.18 민주 표지 참배장성민, ‘호남인사’로 영호남 아우르는 국민대통합적 인물로 급부상김화일 기자 | 2021-03-25 ▲ 김종인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6월에 이어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135-7 세진빌딩6층 ,시사한국화보사  |  대표전화 : 02)720-2883  |  팩스 : 02-720-3855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라 10497  |  발행인 : 고광숙
Copyright © 2011 한국화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ankukhwab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