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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치유의 성지대구 ‘성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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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6  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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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치유의 성지
             대구 ‘성모당’

   
 

첫 눈이 내린다는 ‘소설’도 지났건만 남쪽의 풍경엔 아직도 가을이 남아있다. 늦되는 아이처럼 이제야 농익은 빛을 내는 나무들이 있는가하면, 계절을 잊은 듯 몽우리 져 올라오는 철없는 가지들도 간혹 보인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손꼽을 수 있는 명소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힐링장소는 예상 외로 많다. 대구시 중구 남산 3동에 있는 천주교 사적지 ‘성모당(聖母堂)’은 이러한 의미에서 높은 가치가 있는 곳이다. 재단법인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의 소유로 되어 있는 성모당은 1990년 12월 15일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됐다. 프랑스 루르드 동굴을 본떠 만들어진 이곳은 적·흑벽돌과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아름답고 정교한 건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이다.

   
▲ 성모당

초대 감목 안세화 주교의 허원으로 세워진 성모당
나무가 우거진 주교관 경내를 걷다보면 넓고 평평한 보좌에 세워진 사랑의 성지, 성모당이 눈에 들어온다. 인간의 머리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늘의 영광을 오직 순명으로 받아들인 성모님을 모신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 성모당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순례자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열린 성지, 치유의 성지다.

   
▲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1911년 조선대목구에서 남방지역을 관할할 대구대목구가 분리·설치되면서 부임한 초대 감목 안세화 드망즈(安世華, Florian Demange) 주교. 가진 것은 하나도 없이 오직 가난만을 나눠 갖고 온 안 주교는 교구에 꼭 필요한 주교관, 신학교, 주교좌성당 증축을 이뤄주면 교구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성모님께 봉헌하여 그곳에 루르드의 성모동굴 모형대로 성모당을 세워서 모든 신자들이 순례하도록 하겠다고 허원을 드렸다.

   
▲ 안세화주교

안 주교가 허원을 드린 지 2년 만인 1913년 12월 4일 대구본당(계산 주교좌본당)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등의 협력으로 주교관을 완공했고, 1914년 10월에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건립했다. 그러나 계산 주교좌성당 증축은 이루어지기 어려워 성모당 건립도 자연히 늦어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계산 주교좌성당 보좌 소세(Hyppolyte Joseph Sacet) 신부가 중병을 앓아 선종 직전에 이르렀다. 안 주교는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보인 성모님께 소세 신부를 낫게 해주면 주교좌성당 증축 전에 성모동굴을 봉헌하겠다고 새로 약속했다. 소세 신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1917년 7월 31일부터 성모동굴 공사를 시작, 1918년 8월 15일 공사를 마쳤고, 10월 13일에 성모당을 축성했다.

루르드의 성모동굴 모형대로

   
▲ 성모당경내

안 주교 자신의 모국인 프랑의 루르드에 위치한 성모의 발현지인 마사비엘 동굴을 본 딴 성모당은, 가능한 한루르드 성모굴의 크기와 바위의 세부적인 면까지 비슷하게 하였으며 건축공사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담당했다. 1918년 성모승천 대축일에 완성된 대구 성모당은 프랑스 피레네 산맥 북쪽 기슭 가브(Gave) 강가에 있는 루르드의 성모동굴과 크기는 물론 바위 모양까지 똑같다. 
성모당은 교구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앞쪽에 넓은 마당이 있고 북향으로 세운 붉은 벽돌구조건축으로, 평면은 우측면의 뒤쪽이 안쪽으로 약간 꺾여 들어간 직사각형으로, 내부는 암굴처럼 꾸미고 그 위에 마리아 상을 봉안하였다.

   
▲ 안익사

돌로 된 성모상은 당시 대구교구 프랑스인 사제와 한국인 사제들의 헌금으로 마련됐다. 성모당은 루르드의 성모님이 15세 소녀 베르나데트(Mary-Bernadette Soubirous)에게 18번이나 발현했던 그 모습 그대로 머리에는 흰 수건을 썼고, 청색 띠를 띠었으며, 손은 합장하고 팔에는 은알(묵주)이 드리워졌고, 벗은 양발 위에 금해당화가 피어있다.
외관은 화강암 기초 위에 흑색 벽돌로 각 모서리의 버팀벽과 수평 띠를 구성하고나머지 벽면에는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각 부의 비례구성이 아름답고 벽돌짜임이 정교해서 지금까지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의 장식은 정면에 집중되어 있는데, 정면은 흑색 벽돌을 사용하여 양단 면에 각각 한 쌍의 버트레스를 세웠다. 그 사이에는 큰 반원 아치를 설치하여 좌우 대칭을 이루게 하였다. 그 위에는 좁은 간격으로 3줄의 수평 띠를 두어 작은 반원 아치로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벽면은 붉은 벽돌로 쌓았다. 기념틀의 모양은 교황 레오 13세께서 바티칸 정원에 만들어 놓은 루르드의 성모 기념동굴을 본떴다.
성모당의 동굴 윗면에는 ‘1911 EX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이라고 씌어있다. 1911은 대구교구가 처음 생긴 해를 가리키고, 1918은 드망즈 신부가 교구를 위하여 하느님에게 청한 3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해를 가리킨다.

기도를 들어주는 열린 성지, 치유의 성지

   
▲ 성직자묘지

카톨릭 신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거룩한 땅일 뿐 아니라 각종 가톨릭 신심행사와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사적지인 성모당은 외교인들도 큰 호기심을 갖고 있는 대구의 명소이다. 역대 교황사절에 대한 환영식과 교구적인 경축행사의 식장은 으레 성모당이 되어 왔었다. 1984년 5월 5일 선교 200주년 대구 행사를 위하여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직접 이 ‘루르드의 성모동굴’에서 교구 내 성직자·수도자들과 함께 성모님께 기도를 바치고 대화를 나누었다.
2009년 3월 27일 성모당은 교황청의 교령에 따라 로마의 성모 대성전과 영적인 유대를 맺은 성모 성지가 되었고, 이곳을 순례하는 신자들에게 전대사의 은혜가 주어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구대교구는 2010년 2월 5일 처음으로 성모당 담당사제를 임명하여 평일 오전 11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1973년부터 5월 성모성월이면 대구 시내 각 본당별로 교구청 성모당에서 열고 있는 ‘성모의 밤’ 행사는 전국적으로 성모신심 운동이라는 새로운 기도양식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 루르드의 영적(=기적) 샘물은 특히 치유의 기적을 많이 낳기로 유명한데, 대구 성모당 역시 간절히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식민지 시절, 학병으로 끌려간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도 대구 성모당에서 아들 김수환 신학생의 생환을 간절히 기도드렸고, 김 추기경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성모당에 얽힌 사연으로 인해, 병을 낫게 해 준다는 치유의 장소로 알려져 천주교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있다.           취재 김영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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