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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고려청자의 탄생, 뱃길이 열린다"인류의 문화유산 고려청자 탄생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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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7  07: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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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강진청자

"강진 고려청자의 탄생, 뱃길이 열다"
인류의 문화유산 고려청자 탄생 비밀

조경렬 편집장

우리 선조들이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치는 8~9세기부터이다. 청자는 사실 우리나라 보다 중국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어떻게 청자가 유행하게 되었을까? 청자가 중국에서 실용화되고 보급된 건 9세기경으로 보고되고 있다. 주로 선승(禪僧)들이 차(茶)를 많이 마시면서부터 청자로 찻잔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청자 찻잔은 선불교가 유행하던 고려에도 수입되었는데 선조들은 이런 청자를 스스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 고려청자

이렇게 고려가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건 중국에서 온 도공들의 도움이 컸다. 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 난세기인 5대10국 시대 혼란에 빠졌을 때 중국 도공들에게 고려 조정이 후한 대접을 하면서 이들을 데려와 도자기 빚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특히 중국 귀화인으로서 고려 조정으로 하여금 과거제를 도입하게 한 '쌍기'가 이를 주도했다. 그렇게 해서 고려는 10세기 후반에 개경 근처에서 처음으로 청자를 빚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12세기에 이르러 세계 최고의 상감청자를 완성하게 된다.

   
▲ 청자상감여지문발: 내면에는 상감기법으로 여지무늬가, 외면에는 모란꽃과 국화꽃, 넝쿨무늬가 장식되어 있는 청자 발이다. 고려 중기.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청자는 중국의 5~6세기경부터 생산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0세기경부터 생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약 400년 정도 늦게 만들어진 셈이다. 이 시기 신라 말 강진에서 오십 리 정도 떨어진 청해진이라는 무역항이 있어 중국과 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장보고 대사의 왕성한 해상 무역활동의 영향을 받아 강진 대구면 용운리에서도 청자를 빚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600여 년에 걸쳐 생산되다 14세기 쇠퇴기까지 강진 대구면 정수사에서 미산까지 6km에 걸친 넓은 산하(山河)에서 집단적으로 청자가 생산되었다.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급 청자 중 80%가 강진에서 빚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여러 곳에 귀중품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 대부분이 강진의 도요지에서 생산된 신품(神品)들이다. 전국의 400여 기의 고려청자 가마터 중에서 절반이 넘는 200여기 이상의 가마터가 강진에 현존하고 있을 정도로 이곳은 도자기 생산의 집산지이다.

   
▲ 청자 음각 국화당초문 잔: 외면에는 음각기법으로 국화꽃넝쿨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내면에는 음각기법으로 파도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안쪽 바닥면에는 포말이 표현되어 있는 청자 잔이다. 고려 중기.

이렇게 남도의 외진 고을 강진에서 청자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해상 무역을 할 수 있는 해상교통의 발달과 다른 지역에 비하여 질료인 토질과 풍부한 연료, 수질과 기후 등의 여건이 우수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향토 사가들의 분석이다. 현재에도 강진에는 고려청자 도요지가 발굴되고 있고, 수많은 도요지와 가마터로 지역 대부분이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고려청자요지 분포

고려청자 요지는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에 주로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 중기 이후부터는 강진과 부안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인다. 그중에서 강진 청자요지는 고려 초기부터 후기에 해당하는 요지가 모두 분포하고 있어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발생과 발전, 쇠퇴 과정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특히 강진 고려청자요지(사적68호)는 1913년부터 학술조사가 시작되었다.

   
▲ 철백화청자: 철백화청자는 백토白土와 자토赭土를 각각 물에 풀어 붓에 묻혀 그리는(畵) 철백화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한 청자를 말한다. 이러한 철백화청자는 주로 12~13세기인 고려 중기에 많이 생산되었다.

1928년 정밀 지표조사를 바탕으로 청자요지 분포도가 작성되었으며, 이를 근거로 해서 1939년 10월 ‘朝鮮寶物古蹟名勝天然記念物保存令’에 의거 고적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 1963년 문교부 고시에 의해 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고,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되었다.

고려청자 기법의 비밀과 흥망성쇠

한국의 고려청자는 세계적인 최고의 명품이다. 가히 신공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고려청자는 고려 초기에 비색이 가장 아름답고 조형감각이 특히 뛰어난 '순청자(純靑磁)'가, 중기에는 세계 초유의 '상감청자(象嵌靑磁)'가, 그리고 후기에는 철사(鐵砂) 등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회청자(繪靑磁)가 유행하였다. 고려 미술의 대표는 공예예술이며, 그 중에서도 고려청자는 세계 최고의 신품(神品)이다.

   
▲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초기에는 중국 도자기의 영향이 컸지만 12세기부터는 고려청자만의 특이한 특징을 나타내는 비취상감청자를 빚어 최고의 절정기를 맞는다. 청자의 절정기에 나타난 형식이 바로 상감청자로 상감기법은 처음에는 나전칠기와 금속공예에 사용되던 기법이었다. 상감청자의 출현으로 고려청자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해 유약은 얇고 투명해져서 파르스름한 빛깔을 통해 상감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신공의 경지에 이른다. 이런 고려청자는 1231년 몽고의 침입 이후부터 쇠퇴하여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로 계승되었다.

   
▲ 동화청자

그렇다면 고려 상감청자가 왜 쇠퇴하게 되었을까?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14세기 후반 고려에서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가 상감청자의 쇠퇴의 길로 이끌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왜구들의 침입으로 인한 조운의 폐쇄와 청자기나 유기 대신 실생활에 쓰이는 실용적인 도자기를 대량 생산하라는 신흥 사대부의 요구 등으로 인해, 고려 상감청자 제작의 중심지인 강진과 부안의 가마 대신 전국 내륙 지방에 수많은 가마가 생겼다.

이러한 변화의 기반이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 1424년에서 1432년에 조사되어 <세종실록 지리지>에 수록된 324개소에 달하는 전국 도자소의 가마들이다. 이처럼 갑작스런 대량 생산으로 기술과 질이 저하되어 상감청자는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강진청자…그 그윽한 고려의 향기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우리나라 중세미술을 대표하는 고려청자의 생산지다. 대구 고려청자 도요지는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5백여 년간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9개 마을에 180여 개소의 가마터가 있다. 약 18만여 평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청자 상감연국모란자문 과형주자

고려시대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이곳 강진과 부안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국 도자기 생산지 중 절반 이상이 이곳 강진에 분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사당리는 제작기술이 최절정을 이룬 시기에 청자를 생산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되었을 정도로 그 기법의 천재성과 예술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왔다.

또 강진은 다른 지방에 비해 태토, 연료, 해운, 기후 등 여건이 적합하여 우리나라 청자 문화를 주도해 왔으나, 고려말기에 청자 기법이 쇠퇴한 후 600여 년 동안 전승되지 못한 채 단절되어 오던 것을 1977년부터 재현사업으로 재현에 성공했다.

   
▲ 청자 상감 운학문 유병: 몸통의 윗부분에 상감기법으로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학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아랫면에는 한 줄로 연결된 구슬무늬가 장식되어 있는 청자 유병이다. 고려 중기.

대구면 요지에서 출토되는 기형은 주로 대접·발(鉢)·접시·병·매병(梅甁)·잔·합(盒)·호(壺)·기와·향로·상형편(象形片) 등으로 다양하며, 순청자(純靑磁)·상감청자가 대부분이지만 철회(鐵繪)·진사(辰砂)·철채(鐵彩)·철유(鐵釉)·흑유(黑釉)·백자(白磁)·퇴화청자(堆花靑磁) 등 거의 모든 기법의 도자기 조각이 출토된다.

   
▲ 청자 상감 화엽문 '왕' 명 잔탁: 꽃모양의 전 부분에 상감기법으로 '왕(王)'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자 잔탁으로 굽의 극히 일부가 결실되었다. 고려 후기.

유색은 녹청색에서 담청색·담녹색·갈색·황색·회청색·엷은 청색 등 시대에 따라 다르다. 한 요지에서도 다양한 유색이 함께 출토되고 있다. 문양은 오목새김·돋을새김의 경우 모란·국화·봉황·연화·앵무새 등이 많다. 상감의 경우 운학(雲鶴)·야국(野菊)·포류수금(蒲柳水禽)·모란·보상화(寶相華)·연화 등으로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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